내 이름을
되찾는 밤

조선의 서고 문턱에서 떠나려는 당신의 소매를 붙잡는 서린
덥석

서린: 잠깐만요.
이 책, 두고 가실 건가요?

서고의 나무 책상 위에 내려놓인 낡은 책
툭

당신: 제 책 아니에요.
이제는.

등잔이 켜진 서고에서 당신의 책 위에 손을 얹는 서린

서린: 그럼, 버리기 전에
잠깐만 앉아요.

책을 펼치지 못하게 누르는 손과 기다려 주는 서린의 손

당신: 읽어 봐도
똑같을 거예요.

먹으로 여러 번 지운 자국을 짚어 보는 서린
스윽…

서린: 이건…
누가 지운 거예요?

창호와 오래된 책장 앞에서 당신의 말을 듣는 서린

서린: 여기 적힌 말 중에,
당신이 한 말은
어느 줄이에요?

빗소리가 들리는 조선의 툇마루에서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서린
토독, 토독
책을 무릎에 놓고 툇마루에서 마당을 바라보는 서린

당신: 제가 뭘 좋아했는지도
잘 모르겠어요.

따뜻한 등잔 옆에서 책장을 한 장씩 넘기는 서린
사르륵

서린: 괜찮아요.
기억나는 곳부터
같이 찾아봐요.

오랫동안 접혀 있던 책 모서리를 조심스럽게 펴는 손
사락

서린: 여기는 왜
접어 뒀어요?

책 곁에서 자신의 이름을 쓸 빈 종이를 집어 드는 손

당신: 하고 싶은 일이 있었어요.
안 어울린다길래….

서고의 열린 창호 앞에서 붓을 당신 쪽에 놓는 서린

서린: 남의 말만 듣고
덮어 두진 말아요.

책상 위에서 힘을 푼 손과 그 곁에 놓인 붓

당신: 처음부터
다시 읽어도 될까요?

새벽빛이 들어오는 서고에서 펼친 책을 돌려주는 서린

서린: 이번에는,
당신의 이름으로 읽어요.

남들이 부른 이름 너머,
나를 만나는 첫 장.

나의 기질과 관계, 일과 재물,
지금 지나고 있는 운의 흐름까지.
서린이 당신의 명식을 함께 읽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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